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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파리 첫 산책은 팔레후아얄에서 - 3월 말이면 후두두 떨어져 버려서 기대를 안 했는데 날 기다려주었나 보다. 가마안히 꽃나무를 올려다보거나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으며 꽃을 담는다. 바람 불어 꽃송이들이 살랑이면 다시 한번 발길을 멈춘다. 아까 담은 그 꽃이랑 이 꽃은 같은데, 바람의 살랑임 하나로 다시금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거다. 봄은 그런 계절인가. - 실은 우울한 마음으로 시작한 산책이었다. - 늘 저녁에야 파리에 도착한다. 짐을 정리하고 나면 금세 어두워져버려서 파리에 왔다는 의식도 함께 어두워진다. 이 어둠이 문제다.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바퀴벌레와 눕기 싫은 이부자리 때문에 나는 갑자기 서러워 눈물이 났다. 이곳이 파리라는 자각은 없다. 그냥 난 장시간 비행하고 캐리어 3개를 끌고 방금 힘들게 짐 정리를 마친 어둔 밤의 피곤한 인간일 뿐인 거다. 혼자의 장점은, 울어봤자 소용이 없기에 울음을 빨리 그치고 행동을 한다는 것. 침대 커버를 바꾸고 바퀴벌레는 잊…으려고 노력하며 나는 아침이 오길 열심히(?) 기다렸다. - 아침이 오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밤에 보는 바퀴벌레 사체와 낮에 보는 사체는 많이 다르다. 어제는 서러웠던 것들이 오늘에는 배부른 소리가 돼. 평소라면 이른 시간이라며 다시 눈 감았을 시간에 허이짜! 기운차게 일어나 청소를 하고, 카메라를 챙겨 걷기 시작했다. - ‘나 파리에 있지!’라는 걸 실감하려고! - 우울이 쉽게 가시질 않았다. 함께 있어야 할 사람이 함께 없는데 이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좋은’ 순간마다 들었고. 딴 생각 해야지, 하다가 갑자기 머리를 스친 나의 역작! 그러게 그 사진 어디 있지? 아 그 5테라 외장하드에 있었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어쨌든. 복잡한 마음을 지우려 아주 열심히 걸었다. 처음엔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해서, 허리가 아프고. 배가 고픈데 환율이 미쳐서 쌀국수를 못 사 먹는 설움이 더해져 더 배가 고프고. 피곤하고 졸린데 집에 들어가긴 아까우니까 다시 무리하고. 힘듦, 배고픔, 돈 없음, 이런 원초적인 것들로 잡념을 없애던 스물세 살 때 여행이 생각나 결국엔 웃음이 났다. 그때도 행복했으니까, 이 웃음도 결국엔 행복인 거다. / 평소엔 정오 언저리에는 사진을 찍지 않는데. 그저 첫날이라 열심히 찍은 사진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의 괜찮다는 말에 에라이 마음을 내려놓기로 하고 올려보는, 어제 정오 팔레후아얄 자목련들1006 (1천)26게시물 보기
출국을 며칠 앞두고. 가기 전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데이터 정리라 오랜만에 모니터 앞에 앉았다. 뷰파인더보다, 모니터 앞에 앉아 아까 그 카메라 너머의 장면들을 더 오래 진득하니 들여다보아야 한다. 실은 그게 사진을 하는 나의 주된 일이다. 모니터 앞만큼 익숙하고 당연한 곳이 없는데 한동안 여기 앉기가 힘이 들었다. - 지난가을 5테라를 잃었다. 그 안에는 나의 봄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반년이 지났는데, 떠올리면 웃다가도 눈물이 주루룩 흐를 정도로 감당이 안 되는 충격이었지만. 이미 돌아킬 수 없는 거 다음 할 일만을 생각하며 이겨냈다. 그런 나 자신이 대견할 정도였다. 파리 10년 치 중 한 계절 정도. 그래 10년 만에 한 번 온 시련이니까. 한 번쯤은 겪을 법한 일이라며 나 자신을 다독이고, 외양간을 고치기 시작했다. 아 하필 더 아끼던 소였다. 하필 더 공들인 소였다. 하지만 생각해 무얼해. 앞으로 내게 올 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기로 하고, 외양간을 고치…려다 아싸리 재개발을 했다. - 외장하드에 꾸역꾸역 데이터를 쌓을 줄만 알았지. 뼛속까지 문과인 나는 레이드가 뭔지, 방화벽은 어떻게 세우는(?) 건지, 포트포워딩은 또 뭔지, 아니 공유기는 그냥 와이파이를 쏴주는 기계줄 알았지. 하나도 아는 게 없었다. 그래도 차근차근 공부하고 알아가며 한 달 내내 외양간 재건축에 힘을 썼다. 약 40테라 정도 되는 데이터들을 다시 정리하고, 백업하고, 그래 내가 봄 하나 잃고 지난 10년 제대로 정리한다, 날 대견해하며 한 달을 보냈다. 정말 꼬박 한 달이었다. - 그냥 자고 일어났다. 미리 말하는데 진짜 난 아무 잘못이 없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다가 잘 시간이 되어 자고, 눈 뜰 시간이 되어 눈을 떴을 뿐이다. 비정상적인 어쩌구~ 메일이 와있었다. (서버에 이상이 생기면 메일이 온다.) 이럴 리가 없는데? 기계에서 한참 삐삐- 소리가 나더니 다시 켜지지 않았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하소연도 해봤다. 돌아오는 답변은 기계라는 것이 n%의 확률로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뽑기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고 너무 상심치 말라는 것이었다. 나의 한 달이 삐삐-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나의 재개발 사업이 영문 모르게 무산됐다. 아직 정권도 안 바뀌었는데. - nn%도 아니고 n%가 왜 난데요. 다른 좋은 확률은 날 다 비껴가더니. 이런 건 꼭 정통으로 맞지 시앙. - (다행인지 뭔지, 산 지 한 달 밖에 안 된 것이라 당연히 A/S는 되는데 이게 본사가 제일 가까운 게 홍콩이라나? 거기로 기계를 보내고 다시 받으려면 약 한 달 정도 걸린단다. 그렇게 또 마음 졸이며 한 달을 보냈다.) - 처음엔, 지난해 잘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음 이건 내가 잘못했던 것 같아. 음 그때는 내가 진짜 어리석었지. 그래 그때도 내가 좀 참을 걸 그랬어. 그리고 지금, 이 모든 일들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를 위로해 보려 했다. - 아니 근데. 그때 그건 그렇게 저렇게 벌받았었잖아. 그다음 그건 솔직히 내 잘못만은 아니지 않아? 그리고 그건 내가 그 당사자랑 잘 해결을 했잖아??? 스멀스멀 울화가 치밀더니 결국 극단적이게 된 것이다. - ’엄마, 세상이 나보고 사진 그만 하래!‘ - 마침 세상이 흉흉하고 우울했다(ing). 이러다간 온 나라가 우울증에 걸릴 것만 같아. 나름 징징대는 편이지만 이런 상황에 징징거리는 것은 호화 같아서, 최대한 점잖게(?), 별일 아닌 듯 지나 보내려고도 했다. - 어른스럽게(?), 마음 정리하고 괜찮은 듯 넘어가면 괜찮아지는 줄 알았지. - 지금 주절거리면서 느낀 건데, 하나도 안 괜찮다. 내가 양소유도 아니고, 사라져버린 봄과 또 한 달을 회고하며 일장춘몽, 인생무상~ 이런 우아한(?) 말로 넘어가기엔 난 열불이 나 죽겠단 말이다.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난 건강한 회피형 인간. ‘생각하여서 날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덜 생각하기’ 연습을 꽤 오랜 기간 해왔다. - 틈만 나면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고. 모니터 앞을 멀리하며 지난 몇 달을 다시금 잘 버텼다. (한 달 만에 새 기계가 왔지만, 40테라를 다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박스도 뜯지 않고 그대로 한 달을 두었다. 미루고 미루다 다시 데이터 정리를 시작했는데, 다행히 두 번째 재개발은 한 달까지는 걸리지 않았다.) -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다시 봄 앞이다. 이렇게까지 하소연했으니 이제 누구라도 알 테지. 나는! 올봄은! 올봄만은 절대로 잃지 않을 거다.907 40게시물 보기
the little finger 가장 약한 손가락 걸고 했던 오래고 강한 약속462 8게시물 보기
울던 밤989 20게시물 보기
겨울 잘 가…1115 (1천)52게시물 보기
10년 전부터 파리에서 꾸준히 사진을 찍기 시작해, 매년 ‘일력’을 만들어왔습니다. 한 장 한 장 열심히 담은 사진들로 달력을 만들려다 12장만 고르는 일이 어려워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올해로 10년입니다. - 매년 약 천 권의 일력이 판매되었습니다. 10년간 연례 행사처럼 되었는데요. 이번 일력을 마지막으로 일력 제작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해가 지나도 쓰레기가 되지 않는 무엇무엇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 마지막 일력인 만큼, 제가 2013년부터 최근 사진들까지 고루고루 채웠습니다. 또 이번 일력은 해가 지나도 사용하실 수 있도록 ‘요일’을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해가 또 지나고 2026년이 와도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일력 외, 올해도 A4 사이즈 탁상 달력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크게, 벽에 붙여 사용하실 수 있는 A3 포스터 달력도 제작했어요. 해가 지나도 필요 없는 부분 잘라내고 포스터로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 10년 동안 매해 구매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이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잘 알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곳이기도 하니) 매우 과한 정보를 전해보자면, 매우 기나긴 제작 기간, 인쇄소에서 잘 안 해주려고 함(진짜…), 개인이 진행하기에 버거운 작업량, 이로 인한 스트레스, 일력 생각하느라 사진을 찍는 게 언제부턴가 의무가 되는 것 같은 그런 강박이 제 사진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에 비해 금전적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수익…ㅎ, 지구에게 매우 미안, 앞으로의 시대(?)는 인쇄보단 디지털이 낫지 않을까 뭐 그런 고민 등등과 더불어 10년이면 장하다… 싶은 자기만족감이 일력 멈춤의 이유입니다. 어쨌든! - 마지막 일력이라 울면서(?) 작업했습니다. 파리에서의 소중한 10년이 가득 담긴 나름의 제 작은 사진집입니다. 하루하루 넘겨보시며 지난 파리를 추억하시거나, 앞으로의 파리를 그려보시거나, (파리에서 지내는 분들이라면) 파리가 더럽고 치사해도 예쁘긴 더럽게 예쁘다, 뭐 그런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요약하자면 마지막 일력 많이 예뻐해 주시면.. 좋겠어요! 하하 - 2025 일력/달력은 10월 18일 오후부터 인쇄가 시작되었으며, 12월 18일, 내일 제작 완료되어 제게로 올 예정입니다. 오자마자 쉬지 않고 꼼꼼하게 포장하여 20일부터 순차 발송하겠습니다. 늦더라도 올해 안에 받아보실 수 있도록 할게요. - [주문 안내] ❗️유진킴 굿즈 www.yoojinkim.me❗️상세 페이지 참고 부탁드립니다. -⠀⠀⠀⠀⠀⠀⠀⠀⠀ [배송 안내] ❕모든 제품 2024년 12월 20일부터 주문/결제순 순차 발송합니다. ❕해외 배송은 카카오톡 채널 @YOOJINKIM 으로 따로 문의주세요(우체국 EMS, 배송비 별도). ❕배송지 변경은 12월 18일까지 가능합니다! - 올해도 감사합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764 34게시물 보기
엄마 아빠 손잡고 온 어린아이, 주인 따라 나온 강아지(?), 탄핵하라를 외치며 열심히 시험공부 중이던 대학생, 어린 친구들을 보며 감탄하던 어른들. 이 추운 날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어가는 한걸음 한걸음 포근한 모습이 가득이었다. - 여의도에서 만난, 광주 출신이라는 친구의 친구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중학교 동창을 마주쳤다고 한다. “어? 너가 왜 여기 있어?” 반갑고 신기하여 뱉어낸 인사에 동창이 답한 말은 “내가 여기 있어야지” 였다고. - 타고난 집순이 인 나. (친구가 말했다. 넌 죄짓고 살아도 되겠다고. 거의 수감된 수준이지 않냐고.) 그런 내가 2주 만에 밖으로 나왔다. ‘전국집에누워있기연합’ 깃발을 보고 울컥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 - 만나면 사랑 타령, 미래 걱정 정도 하던 나와 친구들. 의견 대립이라고 해봤자 맥주를 이천을 시킬까 삼천을 시킬까 정도였던 우리들도 한 해 두 해 더 살아가며 나라 걱정을 격렬히 하던 때가 있었다. 십 년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술자리에서 서로 다른 의견에 얼굴을 붉히거나 정적이 이어지거나 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나라 이야기를 멈췄다. 우리 사이를 해치는 정치인들이 싫어 그들을 보길 멈췄다. 그게 우정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 여의도 한복판에서 왜 그날 술자리가 떠올랐을까 - 아. 그간 내 무심의 결과가 오늘이구나. 반성했다. - 좌와 우, 여자와 남자, 이 세대와 저 세대. 이분법과 대 혐오의 시대에, 절반으로부터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나는 (태생적으로 큰) 목소리를 낮추(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타인의 증오를 불사하고 목소리를 내진 못하더라도, 이념과 이익을 떠나 관심 갖고 지켜볼 수 있던 것인데. 이분법에 묻혀 민주, 평등, 자유와 같은 본질을 잊고 살지 않았나. - 태평하던 나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계속해서 입 다물고 있을까 하다가도. 아니 tlqkf 이런 나도 반성이란 걸 하고 수감 생활을 하는데(?), 정작 반성하고 수감되어야 할 윤석열 씨의 한 문장 한 문장이 개탄스러워 가만히 있기가 어렵다. 개미 소리라도 내어야지. - 그저 작금의 사태에 통탄하는 것을 ‘정치병’으로 보는, 그런 시선을 이겨내는 일이, 어른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행한 노력보다 천 배 만 배는 쉬울 것이기에 - 나는 고작, 서랍 속 고이 모셔둔 응원봉을 꺼냈다.2468 (2천)54게시물 보기